[눈 위에 남겨진 신념]
KPC. 안톤 셀레스
PC. 베르너 L. 퍼디난드
원문 시나리오: 레임
사전 개변: 펜
플레이타임: 12시간
이하로 시나리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2019.06.16
*
당신을 누구보다도 존경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
【 눈 위에 남겨진 신념 】
KPC. 안톤 셀레스
PC. 베르너 L. 퍼디난드
...
*
당신은 나의 기사가 아니었습니까.
평생 나만을 바라보겠다 맹세한,
나의 사람이 아니었나요.
...
"주군, 저는 당신께 실망했습니다."
…
목 끝에 겨눠진 검 날이, 시리게 빛났습니다.
...
..
.
그 일이 일어난지도 얼마나 되었던가요.
온기조차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방.
감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크고,
그렇다고 해서 호화롭다고 하지는 못할 분위기의 장소입니다.
성 안에서 쓰지 않던 방이어서인지
공기는 매캐하지만 목재 테이블, 책장, 침대 등 갖출 건 다 갖추고 있습니다.
죄인의 신분이라고는 했지만
이 방에는 창살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매일 아침 감시를 맡은 이가 문을 열고 이곳에 들어와
한참 시간을 보내다 나갈 때쯤 문을 잠그고 가는 것이 전부일 뿐,
어쩌면 허술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보안 상태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단 한 번도 탈출할 시도를 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을 감시하는 이는,
다름 아닌 당신의 기사.
'안톤 셀레스' 니까요.
이제는 기사 '였던' 자 일까요?
...
처음에는 다른 이가 들어왔던 것 같기도 합니다만,
언제부터인가 이 방에 들어오는 사람은
단 한 사람, 그 뿐이 전부였습니다.
굳게 다물고 있는 입,
따뜻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시선.
얼굴을 제외한 온몸을 옷으로 꽁꽁 가리고 있는 모습은
여전히 철저한 그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하지만...
이전의 복장과는 정 반대의 분위기를 품고 있는 옷차림 탓일까요,
그는 당신이 알고 있던 안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듭니다.
안톤 셀레스:... ...
언제나 그랬듯이
안톤은 당신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고
방에 들어오자마자 낡은 책장에서 먼지가 가득한 책을 꺼내더니
문 앞에 위치한 테이블에 자리하였습니다.
...
그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무엇이었죠?
"베르너 님, 잠시 알아볼 것이 있어 시찰을 다녀오겠습니다."
...
아니, 아니죠.
이건 당신이 알고 있던 당신의 기사,
안톤 셀레스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눈 앞의 안톤이 가장 최근에 당신에게 건넸던 말은,
"주군, 저는 당신께 실망했습니다."
...였습니다.
혁명이 있던 날.
그가 건넨 한마디는...
당신의 마음 깊숙한 곳에 박혀
함부로 꺼내기조차 어렵게 되었습니다.
...
그날 이후 안톤은 매일같이 이 방에 들어오면서도,
당신에게 안부 인사 한 번을 건네지 않았죠.
매일 아침 당신의 방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리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안부를 묻던
당신만을 위한 기사 안톤 셀레스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톡, 톡.
책을 가볍게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소리.
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면 안톤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책에 집중이 안 되는 듯합니다.
겉으로만 봐서는 티가 잘 안 나지만...
그를 오랫동안 지켜봐온 당신이라면 알 수 있죠.
...
책에서 거두어 천천히 옮겨진 시선이 당신과 마주쳤습니다.
이렇게 시선을 마주한 것이 얼마 만이던가요?
어쩌면 대화를 해볼 수 도 있을 것 같습니다.
:RP 해금.
베르너 L. 퍼디난드:... ... (근원지조차 알 수 없는 오해에 휩쓸려, 한 나라의 주인에서 순식간에 죄인의 신분으로 끌어내려진 지 벌써 시간이 얼마나 오래됐을까. 이 방에 달력이, 시계 같은 것이 있었는지 찾아볼 생각조차 않았던 것 같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바라보아도 아무런 감흥이 들지 않았다. 잠시 당신에게서 고개를 돌려 눈을 느리게 내리감았다 다시 뜨고는 그때를 잠시 회상해 본다. 당신이 내게 건넨 마지막 말, 주군, 저는 당신께 실망했습니다. 토씨 하나 빼먹지 않고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사실 당신이 내게 건넨 말은 그 무엇 하나 기억하고 있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실망했다, 라. 다른 어떤 것도 아닌 그 단어에 큰 괴리감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당신이 나한테 실망할 수 있는 사람이었나? 당신은 나의 능력을 보고 내게 충성한 것이었나. 내가 뛰어난 군주였기에 그리 평생을 함께하겠다 맹세한 것이었나. 아닐 터였다. 그럴 리가 없었다. 당신은, 당신은... ... . 기억을 떠올린 것만으로 밀려오는 두통에 잠깐 미간을 찌푸렸다. 배신감, 그 단어를 당신으로부터 갖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가장 끔찍하게 두려워했던 상황, 그렇기에 당신을 그렇게도 필사적으로 밀어냈던 것인데. 그 벽을 부수고 들어와 함께하게 해 달라고 했던 것은 다름아닌 당신이었다. 이런 상황이, 내게 닥쳐오는 것이 그리도 무서워서, 그렇게 밀쳐낸 것인데, 기어이 당신이 나를. 나를 무너뜨린다. 군주로서의 나도 끌어내렸으며, 사람으로서의 나 또한 망가뜨렸다. 당신만은 끝까지 내 곁에 있어야 할 사람이 아니었는가. 설령 내가 정말 폭군이라고 하더라도 당신은 나를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니었는가. 나는... 무슨 죄를 지었지? 어떤 짓을 해서 신에게 미움을 사면 이렇게까지 한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지? 억울함 따위는 진작에 다 타서 재밖에 남지 않을 터였다. 설령 정말 억울하게 끌어내려지더라도, ...당신이 곁에 있었다면 두려울 것이 없었을 터였다. 매정한 운명이다. 한순간에 내 모든 것을 이렇게 앗아가다니.
독백이 끝나고 기억이 넘어간다. 당신이 내 방에 처음으로 들어왔을 때는 잠깐이나마 반가워했던 것 같다. 차게 식은 눈빛으로 내 목에 칼까지 겨눴던 자를 다시 만났다는 사실만으로 얼굴에 화색이 돌았었다. 그마저도 당신의 표정을 보고 전부 가라앉았던 것 같지만. 배신감... 은 원초적인 감정이 아니었다. 내가 당신에게 느껴야 할 것은 좀 더 근본적으로 따지자면 분노와 원망이었을 터였다. 그 말대로 나는 원망했었다. 하지만 그 감정의 대상은 당신이 아니라 이 상황을 향해 돌아갔다. 당신을 끝까지 믿고 싶었다. 배신감이라는 감정은 사람을 좀먹고 고통받게 만드니까.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한때 평생을 다 바쳐 사랑한 당신에 대한 믿음이 박살난 채 당신을 원망하고 저주하는 것은 내가 차마 버티지 못할 만큼 아팠으니까. 어떤 이유가 있었겠거니, 무언가 상황이 잘못되었겠거니... 그리 믿으며 얼음장 같은 당신과 방에 감도는 찬바람을 견뎠다. 아니, 그걸 견뎠다고 할 수 있나? 감히 문장으로 다 담지 못할 만큼 복잡한 심정이 매일매일 갉아먹을 듯한 통증으로 온 몸을 옥죄어 왔다. 견디지 못했다. 부서졌고, 당신이 사랑했던 물색 눈은 빛을 잃고 탁색되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시선을 그대로 두고 있던 당신과 눈을 마주쳤다. 한 점의 온기조차 담지 않은 눈. 매일 같은 미련에 목매여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알고 있던 그 사람이 맞나. 언젠가는 사실 바꿔치기라도 당한 게 아닐까, 하는 터무니없고 우스운 생각을 스치듯 했던 것도 같다. 이제 와서는 전부 소용 없는 생각이다. 딱히 무언가 말하겠다는 의도 없이 그저 당신의 이름을 그려 짚듯 나지막히 내뱉었다. 당신의 이름을 불러 본 것은 또 얼마만인가.) 안톤.
안톤 셀레스:(들려오는 목소리에 그의 눈동자가 가만 당신을 응시한다. 무엇이 담겨있던가, 어딘가 공허한 것 마냥 비어있는 눈동자에는 어떤 감정이 담겨있는지 차마 가늠할 수 없다. 표정은 여전히 바깥의 칼바람보다도 시리고 차갑다. 그가 유독 싫어했던 추위와 냉기가 온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마냥, 오로지 그것만을 두른채로 당신의 앞에 있고, 당신에게 담았던 그 어떤 것도 지금은 담지 않은 것이 이질적이다.
당신의 흔적은 그에게 있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 당신에게 귀걸이를 받고 기쁜 듯이... 어울리냐며 조심스럽게 물어보던 순간이 있었을 건데, 분명히 있었을 텐데, 그 추억은 바스라져 그의 모습 어디에서도 남아있지 않고. 그가 당신께 영원을 약속하며, 굳은 믿음을 맹세하며, 함께 할 것을, 함께 갈 것을 맹세하며... 자신이라 생각하며, 이것이 있다면 당신과 떨어져 있더라도 결코 떨어지진 것이 아니다 라며 지녀달라했던 브로치도 그의 몸 어디에서도 발견 할 수가 없다. 당신과 다정함을 나눴던 눈은 탁해졌고, 따스한 온기를 지녀 당신을 어르던 얼굴은 그 어느때보다 차고, 그 이상으로 창백하다. 당신이 기억하던 그의 차림과는 정 반대의 차림, 망토의 색도, 견갑의 색도, 그를 감싸던 모든 것들이 당신이 기억하고 있던 것과 다르다. 아니, 틀리다. 눈 앞의 자를, 안톤 셀레스라고 할 수 있을까.
차라리 그가 죽었다 고 믿는 편이 편할지도 모른다. 당신의 모든 것을 채워주겠다는 듯이, 그렇게 당신에게 손을 내밀고, 당신을 잡고, 당신의 곁에서 당신이 갈 길을 함께, 영원히 걷겠다고, 당신에게 제 모든 믿음과 모든 헌신을 바치겠다고, 당신에게... ... 결코 깨지지 않는 믿음이 되겠다고. 그렇게 다가가 당신을 안았었을텐데, 당신이 이를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알고 있었을텐데. 그럼에도, 그 모든걸 깨고 당신을 무너트리고 말았는데.
그래. 여전히 당신을 응시하고 있지만... 이젠, 아무것도 남지 않은 얼굴이 당신을 바라보는 것만 같다. 들리는 목소리에도 눈빛은 변함이 없어 보인다. 시선의 끝은 당신을 담는 것 같지만, 고갯짓을 하지도 웃지도 않는다. 메말랐다. 당신을 만난 그 수많은 순간 중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여전히 무감정한 얼굴로 답한다.) 왜 부르십니까.
베르너 L. 퍼디난드:(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도 이만큼 차가운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추위를 싫어하지 않았는가. 무뚝뚝했지만 냉담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지 않았는가. 지금의 당신은 온 몸에 그 추위를 단단히 감싸고 있는 것만 같다. 다시 한 번 생각한다.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맞나. 당신을 언제까지 그저 하염없이 믿어야 할까. 날 선 목소리가 냉기를 담고 귀를 관통한다.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이런 목소리를 들을 거였다면 그냥 부르지 말 걸, 하고 잠깐 후회했을까.) ... 아니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안톤 셀레스:(그저 당신을 가만 바라보다가 잠깐 입을 달싹였다. 뭔가 말을 꺼내려했던 것도 싶었는데. 그대로 입을 꾹 닫아버리곤, 그저 느린 시선으로 당신을 찬찬히 훑다가, 곧 다시 책으로 향했으나 무감정한 얼굴 안에는 어째 여전히 집중이 되지 않는듯한 얼굴이었다. 손으로 눈가를 한번 짚었다.) 그렇습니까. (잠깐 시간을 확인하는 듯 하더니) 곧 밤이 오겠군요.
안톤은 보고있던 책을 덮습니다.
표정은 여전한 무표정입니다, 표정을 짓는 법을 잊어버린 것 마냥.
"...이제 슬슬 가봐야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뱉은 말은 사무적인 한마디.
그는 책에 가득하던 먼지 때문인지
입을 포함한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는
언제나 그랬듯 문을 잠그고 나갑니다.
어째 나가던 모습이...
살짝 황급히 나갔던 것 같은데... 기분 탓일까요?
마지막에 안톤의 얼굴이 어땠는지 생각해봐도,
기억나는 것은 차가운 무표정 뿐입니다.
...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어느새 어둑합니다.
밤이 내리는 모양입니다.
오늘도 이곳에서,
...
..
.
*
이른 새벽입니다.
창 밖으로는 햇빛이 서서히 비쳐오고,
바람 소리를 뚫고, 조금씩 새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습니다.
눈을 뜨자마자 바라본 방문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아직 이곳에 안톤이 올 시간이 되지 않은 건지,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참에, 그가 오기전까지...
이 방 안을 둘러보는건 어떨까요?
이 곳에서 머문지도 꽤 되었지만,
감시로 인해 제대로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방 안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로 눈에 들어오는 방 문과, 그와 가까운 장소에 놓인 목재 테이블,
벽 한켠에 놓인 책장, 그리고 당신이 있는 침대입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방문을 살펴본다.)
나무로 된 문입니다.
오랫동안 관리를 안 해서 그런 걸까요?
구석에 먼지가 조금 쌓인 것 외에는 특별히 갈라진 곳도 없고,
아직까지는 쓸만한 것 같네요.
베르너 L. 퍼디난드:(방문에 더 살펴볼 것은 없나?)
문 손잡이가 눈에 들어옵니다.
아마 잠그고 나갔겠죠.
:더 살펴볼 만한 것은 없어보입니다.
열어보는 시도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안 열릴 걸 알면서도 문 손잡이 한 번 잡고 열어 보나...)
:베르너, 근력 롤.
베르너 L. 퍼디난드:
문 손잡이를 한 번 돌려보기만 할땐,
철컥거리는 소리만이 들릴 뿐입니다만....
그럼에도 힘을 주어 밀어보니
틈이 살짝 벌어져 바깥이 보입니다.
과거에 당신이 거닐었던 붉은 카펫이 깔린 복도.
그곳은... 지나치게 조용해,
마치 이곳에 혼자 남은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힘이 조금 풀리자, 방 문은 곧장 다시 닫혀 틈마저 사라집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아니... 솔직히 힘 좀 준다고 틈이 보일 정도면 부수고 나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나무 문이라...
하긴, 여기는 ...
꽤 허술하기는 합니다.
당신을 가둬 둘만한 장소로는 어울리지 않기도 하네요.
:부수고 나갈까?
베르너 L. 퍼디난드:(일단 다른 곳을 먼저 살펴본 후 시도하도록 하자.)
(목재 테이블로 간다.)
왜 이런 장소를, 무려 당신을 가둘만한 장소로 하필...
결정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남습니다.
테이블로 향합니다.
안톤이 이곳에서 독서를 할 때 사용하던 테이블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이미 정리를 해두었는지
테이블만은 깔끔한 상태네요.
이렇게 보니 꽤나 좋은 목재로 만들어진 듯합니다.
:베르너, 관찰 롤.
베르너 L. 퍼디난드:
어두운색의 목재 테이블 위에
이질감이 느껴지는 무언가가 어렴풋이 보입니다.
이건...
피가 굳은 자국인가요?
이상하네요,
당신은 테이블 가까이에 온 적도 없는데.
:베르너, 아이디어 롤.
베르너 L. 퍼디난드:
그래요,
이 테이블에 항상 가까이 있던 사람은...
안톤 뿐이었죠.
어제 급하게 방에서 나가던 모습이 문득 떠오릅니다.
...이 피는, 안톤의 것일까요?
그저 어렴풋이 추측할 뿐입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 ... (말없이 핏자국을 손가락으로 한 번 문질러 본다.)
목재에 스며들어 굳은 탓에 손 끝에 묻어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굳은지 얼마 안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테이블에 더 찾아볼 것은 없는가? 서랍이라던가...)
서랍은 딱히 보이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목재 사각 테이블의 형태입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테이블의 아랫쪽에 살펴볼 것은 없는가?)
:베르너, 행운 롤.
베르너 L. 퍼디난드:
(;
:흠...
한번 더 해볼까? 단 이번엔 어려움 이상입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
(관두자.)
아무런 흔적도 없습니다.
먼지만이 보이네요.
베르너 L. 퍼디난드:(테이블 근처에는... 이젠 정말로 더 살펴볼 것이 없는가?)
:꼭 봐야할 것은 다 본 것 같습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책장을 살펴본다.)
책이 잔뜩 꽂혀 있는 책장입니다.
크기가 커 한쪽 벽면을 모두 차지하고 있습니다.
안톤이 꺼내본 건지 비교적 먼지가 덜 쌓인 책이 몇 권 보이네요.
책 몇권을 꺼내 읽어볼까요?
베르너 L. 퍼디난드:(읽어 본다.)
대충 눈에 들어오는 책 세권을 꺼내들었습니다.
첫번째 책을 펼치자,
보이는 내용은 평범한 소설책입니다.
대충 보아도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로 뻔한 ...
로맨스 장르네요.
특별히 별다른 것은 없어보입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평범하고 진부한 로맨스 소설... 이런 걸 읽는 취미가 있었던가? 두 번째 책을 집어들어 펼친다.)
여러 주술적 내용을 담은 오컬트 서적입니다.
안톤이 이런 걸 읽을 줄은 몰랐는데…
몇 장을 넘기다 보면 삽화 하나가 눈에 띕니다.
보고 있으니 어쩐지 소름이 끼치네요.
이성치체크.
베르너 L. 퍼디난드:
(??????)
:????
??
소름은 그 이상으로 당신을 오한이 들게 만듭니다.
이성치 -2 감소.
그 옆에는 짧은 문장이 적혀 있습니다.
[ 그는 항상 재앙의 배후에 존재한다. 그 존재가 나타날 경우 모든 이들은 공포와 광기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
무슨 이야기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습니다.
문구를 확인한 베르너, 이성치 체크.
베르너 L. 퍼디난드:
(아니...)
소름끼치는 내용에 있어, 막연한 불안이 듭니다.
이성치-1 감소.
베르너 L. 퍼디난드:(두 번째 책에서 더 살펴볼 것은 없는가?)
:더이상 볼 만한 것은 없어보입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기분 나쁜 감각이 든다. 미간을 한 번 주무르고는 세 번째 책을 펼쳤다.)
조금 두통이 오려나요, 이를 뒤로하고 세번째 책을 핍니다.
한 눈에봐도 다른 책에 비해 두툼한 책입니다.
:베르너, 행운 롤.
베르너 L. 퍼디난드:
:쓰.....읍...............
베르너 L. 퍼디난드:(무슨... 일이지?)
:한 번 더 해봅시다. 일반 성공시 성공.
베르너 L. 퍼디난드:
(휴;
:휴
책을 펼쳐 넘기다 보니, 문득 종이 한 장이 바닥에 떨어집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종이를 집어 내용을 확인한다.)
주워보면...
어라,
이건... 작게 만들어진 당신의 초상화네요.
자주 꺼내어 본 듯 종이가 낡은 상태입니다.
이런 곳에 왜 끼워져 있는 거죠?
베르너 L. 퍼디난드:... ...? (초상화의 뒷면도 살펴본다.)
뒷면에는 별다른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책의 내용을 읽어 본다.)
:흠...
베르너 행운 롤.
베르너 L. 퍼디난드:
:........
베르너 L. 퍼디난드:(아.,...............................)
책의 내용은 특별하다 할 것이 없어보입니다.
:볼 만한 것은 다 본 것 같습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하아...)(이제 침대만 남았는가?)
당신이 머문 침대가 눈에 들어옵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침대를 살펴본다.)
꽤나 푹신푹신한 침대입니다.
당신이 매일 쓰는 것이기에 이것만큼은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있습니다.
매일 이곳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끝냅니다. 별다른 것은 없군요.
베르너 L. 퍼디난드:(정말... 별다른 것이 없는가?) (이불이나 한 번 들춰보나...)
왜... 못믿는 것이지?
이불은... 죄없이 펄럭였다.
베르너 L. 퍼디난드:(알다시피... 나는... 특기가 의심이니까.(?))
그렇다... 이젠 정말 아무것도 안 믿게 되어버렸네요.
베르너 L. 퍼디난드:(갑자기 뼈맞음...)
(방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다 살펴보았나?)
:더 살펴볼 것은 없어보입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음... ...)
...
그렇게 잠시 방을 둘러봤을까요.
문 쪽에서 인기척과 함께 소리가 들려옵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아...,, 튈 수 있을 때 튈 걸 그랬나...)
아, 그러고 보니 슬슬 안톤이 들어올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잠시 시간이 있을 때 행동 했어야 했는데... 어쩔 수 없게 되었군요.
철컥, 하며 문의 잠금쇠가 풀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안톤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지쳐 보입니다.
언제나처럼 목 까지 가린 차림새,
양손을 덮고 있는 까만...
어라,
오늘은 어쩐 일인지 전과는 달리 장갑을 끼고있지 않습니다.
안톤은 눈치채지 못한 걸까요?
누구보다도 철저한 그가?
:베르너, 관찰 롤.
베르너 L. 퍼디난드:
(제발.......)
:.. . . . 한번 더 해봅시다...
베르너 L. 퍼디난드:(진짜 제발)
(ㅠ
:성공
그리고 오랜만에 마주한 그의 손은...
일전, 당신의 기사로서 마주했던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흉터가 남아있습니다.
안톤은 본래도 손에 잔흉터가 꽤 있었다지만…
저렇게 많았던가?
기억하고 있지 않은 곳곳에도 흉터가 새겨져있습니다.
...
시선이 느껴진 모양인지,
안톤은 뒤늦게 장갑을 끼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양,
황급히 손을 등 뒤로 숨깁니다.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입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당신에게 시선을 고정시킨다.)
안톤 셀레스:... ... 뭘 그렇게 보십니까. (느껴지는 시선을 굳이 피하지는 않는다.)
이어서 드러난 손은, 흑색 가죽장갑이 꽉 끼어진 채입니다.
잘 못봤나?
베르너 L. 퍼디난드:... 오늘은 어째 평소와 조금 다르십니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봐도 답해주지 않으시겠죠. (담담한 어조다.)
안톤 셀레스:잘 아시는군요. ...굳이 당신꼐 말해드릴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안톤은 꽤 피곤해보입니다.
:베르너, 아이디어 롤.
베르너 L. 퍼디난드:
당신은 분명히 봤습니다.
잘못 봤다는 착각을 당신이 할리가 없습니다.
순간이지만 장갑을 잠시 끼고 있지 않았고,
그걸 잊어버린 정도라면...
묘한 감각만이 듭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흠... ...)
안톤 셀레스. (나지막히 당신의 이름을 불렀다.)
안톤 셀레스:(부르는 목소리에 느리게 시선을 옮겨 당신을 바라봐) ...왜 부르십니까, 어제부로 부르시는 일이 잦군요.
잠시 돌아보는 얼굴은 어제보다 확실히 안색이 좋지 않아보입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글쎄요, 사람이란 게 원래 변덕스럽지 않습니까. 당신의 일에 대해 캐묻는 것도 아니고, 감정을 상하게 할 의도도 없습니다. 그저 단순한 한 가지만 물어 봐도 되겠습니까.
안톤 셀레스:(느리게 눈을 깜박이다가, 손으로 입가를 잠시 만졌다가 손을 내리며) 상관 없습니다. 물어보십시오.
베르너 L. 퍼디난드:... ... (잠시 머뭇거리며 말을 고르는 듯 하더니) 당신과 내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척박한 삶을 살고 있다며 당신이 내게 비유한 식물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십니까.
당신의 질문을 들은 안톤은 한참이나 대답이 없습니다.
안톤 셀레스:(아무런 말을 않다가, 느리게 입을 열어) ...의미 없는 질문을 하십니다.
어쩐지 뒷말을 이어 할 법 했으나... 이윽고 말은 거기서 멈춥니다.
답을 하고는 평소처럼 책장으로 향합니다.
:베르너, 관찰 롤.
베르너 L. 퍼디난드:
:오.............
베르너 L. 퍼디난드:(혈압;)
책을 빼내는 안톤의 모습은 여지껏 보인 평소와 같아보입니다.
그 때,
책을 꺼내들던 안톤이 잠시 휘청이더니
책장에 기대어 서 연신 기침을 하기 시작합니다.
기침은 멎지 않을 것처럼 한참을 이어지더니
이내 안톤이 입을 가리고 몸을 움츠리고 나서야 멎습니다.
앓는 듯한 소리를 내던 안톤이 뒤를 돌아보고,
당신과 눈이 마주치자 쫓기는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방에서 빠져나가버립니다.
그가 갈 때까지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야...
그의 입가에 옅게 남은 핏자국을 보았으니까요.
사라지기 전 안톤의 몸 상태는 어땠죠?
당신에게만 보이던 다정히 웃는 모습,
언제나 모든 최선과 성의를 다해 보필하던 그의 모습은
누가 봐도 아픈 곳 하나 없는 건강한 사람이었습니다.
분명히 그랬을 텐데.
지금 당신의 앞에 있던 안톤은, 분명...
당신을 배신한 자이지만
미묘하게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
마주쳤을 때 흔들리던 그의 눈동자가 기억에 남아
그가 돌아온다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습니다.
시선은 무의식적으로 닫힌 문 쪽에 계속 향하고,
... 아무래도 오늘 마음 편히 남은 시간을 보내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 ...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이대로 불편하게 안톤에 대해 신경쓰면서 다음날을 기다리거나... 문을... 부수고 나가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닌가?)
:원한다면 아이디어 롤을 굴려볼 수 있습니다.
우연:(* 아이디어 롤 굴려 보겠습니다.)
:베르너, 아이디어 롤.
베르너 L. 퍼디난드:
:음.......
뭘 해도 우선적으로 의미있는 행동은 아닐 것 같습니다.
얼마지 않으면 안톤이 다시 돌아올테고.
나간다 한들, 소란을 눈치채지 못할까요.
일단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보입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갑니다.
...
..
.
*
어제 안톤이 나간 이후로 방문이 다시 열리는 일은 없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해가 중천에 뜨고 나서도 몇 시간이나 지났는데
여전히 문밖은 조용합니다.
원래대로라면 이 시간보다 한참 전에 ...
안톤이 와서 감시를 가장한 독서를 하고 있었을 텐데요.
...
어제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 걸까요?
현재 있는 침대에서는 무슨일이 일어났는지도
확인이 불가능 할 것 같습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그럼... 침대 말고 이 방의 다른 곳을 또 살펴보아야 하나?)
유일하게 바깥을 확인해볼 수 있던 곳이 있었던게 기억납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문인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문으로 향해 문고리를 잡고 힘을 주어 열어 본다.)
어라.
문 고리를 잡고 힘을 주어 밀어보려던 것이 무색해질 만큼...
굉장히 쉽게 문이 열립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
:베르너, 아이디어 롤.
베르너 L. 퍼디난드:
(나는... 뭐가 문젤까?)
어제 안톤이 급하게 방에서 나가던 모습이 다시 떠오릅니다.
문을 잠글 새도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복도를 둘러보면...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도, 소리가 들리지도 않습니다.
이참에 성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얻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도망치기 가장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군요.
어떻게 할까요?
베르너 L. 퍼디난드:(음..........................)
(도망쳐봤자... 많은 사람이 나를 알아보지 않을까? 설령 신분을 숨긴다고 해도 신분을 숨긴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될까? 또, 다시 잡혀들어온다면 이보다 훨씬 감시가 심해지기도 하겠지. 도망치는 것은 무모한 선택인 것 같다. 성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얻어 보자.)
당신의 판단은 꽤나 현명한 축에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럼요, 그 누가 왕이 도망쳤는데 알아차리지 못할까요.
당신은 성을 둘러보기로 합니다.
과거, 익숙하게 걷던 붉은 카펫이 깔린 복도를 따라 걸음을 옮기다보니
위로 향하는 계단이 보입니다.
위치상... 이 위층에는...
당신과 안톤의 방이 있었던 게 기억납니다.
계단을 한 칸 한 칸 밟으며 올라가니 금방 넓게 트인 복도가 보입니다.
...
이곳 역시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안톤은 자신의 방에 있는 걸까요?
기사일 때에는 밤새 당신의 곁을 지키겠다며
당신의 방 문 밖에서 서 있는 경우도,
당신의 곁에 머무르고 있던 경우도,
필히 적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으니까요.
계단을 오르고 가까운 곳에는 당신의 방이,
그보다 조금 더 떨어진 장소에는 안톤의 방이 있습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내 방과 안톤의 방 중... 어느 곳으로 갈지 결정하면 되나?)
:그렇습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우선 내 방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내 방으로 향했다.)
당신은 가까운 당신의 방부터 둘러보기로 합니다.
문을 열자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곳은 당신이 왕위에서 쫓겨나기 전까지만 해도 사용하던 호화로운 방입니다.
현재 사용하는 방에 비해 사용감이 느껴지지만...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습니다.
...?
무언가 이상하지 않나요?
당신의 방은 분명 혁명이 일어났을 때 엉망이 되었을 텐데요.
방에 들이닥친 이들이 값비싼 장식품들을 깨부수고,
바닥에는 혁명군들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뒤섞이던 그날의 일이
아직까지 생생한데도 ...
이곳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끔한 모습입니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요?
이성치 체크.
베르너 L. 퍼디난드:
뭐... 다음 왕을 위한 방으로 선정되서 정리라도 된 모양이지.
이성치 감소 X.
방을 천천히 둘러보다 보면
당신이 간단한 집무를 처리할 때 앉던 의자가 보입니다.
그 앞에 있는 세련된 디자인의 긴 목재 책상에서 ...
뭔가 반짝이는 것 같습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반짝이는 무언가를 집어 확인해본다.)
어라 이건...
가까이 가서 확인해보면 긴 검이 검집에 들어가있는게 눈에 띕니다.
책상과 검집의 색이 일치하는 탓에,
검의 가드부분만이 반짝이던 것이 눈에 들어온 것 같습니다.
:베르너, 관찰 롤.
베르너 L. 퍼디난드:
:씁..........................................................
베르너 L. 퍼디난드:(하............................................)
:99.........
강행 가능, 어려움 이상.
베르너 L. 퍼디난드:(제발ㅈㅔ발진짜제발)
(관두자.)
:행운 롤 굴려봅시다.
베르너 L. 퍼디난드:
:아.........................................................................
베르너 L. 퍼디난드:(하...........................................................................................................................................)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검이네요.
주인이 따로 있는 것 처럼 보입니다.
가드에 박힌 보석에 유독 시선이 맺힙니다.
:아이디어 판정.
베르너 L. 퍼디난드:
:좋앗어
아.
보석을 보니 이제야 생각이 납니다.
이건… 당신이 직접 하사한 안톤의 검입니다.
안톤이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던,
제 목숨인 것 마냥 중히 여겼던,
그리고... 혁명을 일으켰을 당시 당신의 목에 겨누었던,
바로 그 검이요.
검의 가드 중앙에
당신과 그를 상징하는 푸른 아쿠아마린이 박혀 빛납니다.
어째서 이게 여기에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 ... (말없이 가드 중앙에 박혀 있는 아쿠아마린을 엄지손가락으로 한 번 부드럽게 쓸어내린다.)
아쿠아마린은 여전히 빛납니다.
관리를 잘해준 것인지 탁해지지도 않았습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혁명이 일고 시간이 조금 지나지 않았던가... 아직까지도 검을 관리하고 있었다는 뜻인가?)
그렇네요.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우선은 특별히 이것 말고는...
당신의 방은 여전하기에 별다른 것은 없어보입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방에 더 살펴볼 것 없이 바로 안톤의 방으로 향하면 되는가?)
그래도 되겠습니다. 더 돌아볼 것은 없어보이니까요.
베르너 L. 퍼디난드:(안톤의 방으로 향했다.)
안톤의 방 문 앞,
잠시 고민하다가 천천히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엽니다.
들어선 안톤의 방은...
아무런 온기도 느껴지지 않아서,
마치 아무도 사용하지 않던 방 같습니다.
오히려 당신이 갇혀있던 방이 더...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로요.
...
...?
안쪽에서 앓는듯한 얕은 신음 소리가 작게 들려옵니다.
방 안에서는
대충 생활할 수 있는 간단한 가구만 들여져 있습니다.
보이는 건 적당한 크기의 침대와 그와 머지 않은 곳에 있는 옷장.
그리고 작은 서랍장 뿐입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소리가 나는 곳은 시야에서는 보이지 않는가...?)
아무래도 침대쪽에서 나는 것 같네요.
베르너 L. 퍼디난드:(어... 음... 앓는 소리를 무시하고 방의 다른 곳을 먼저 살펴봐... 도 되는가?...)
:가능합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좀... ... 미안하지만... 정보가 먼저다. 서랍장부터 살펴본다.)
작고 낡은 서랍장입니다.
칸은 총 세 칸이 있습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첫 번째 칸부터 열어 본다.)
덜컥.
잠긴걸까요? 열리지 않습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음...)(바로 두 번째 칸을 확인한다.)
단검 하나가 들어있습니다.
간단하게 쓸만한 크기로, 챙기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단검을 챙긴다.)
:단검 습득.
베르너 L. 퍼디난드:(두 번째 칸에는 더 살펴볼 것이 없는가?)
그 외에는 뭔가 없어보입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세 번째 칸을 살펴본다.)
세번째 칸도... 잠겨 있는 모양인지 열리지가 않습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왜 다 이 모양이야...) (서랍장에 더 살펴볼 것은 없나?)
일단은 없는 것 같네요.
베르너 L. 퍼디난드:(옷장을 확인한다.)
옷장 문을 열자,
꽤 한적한 공간이 드러나고
한 쪽에 걸려있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피투성이로 헤진 하얀 털망토.
보지 않으려 해도 너무나도 선명히 눈에 들어옵니다.
망토의 윗단과 아랫단 끝에 그어진 금장 테,
당신은 단번에 이것이, 누구의 것인지 알아차리고 맙니다.
...
망토가 걸린 그 아래에는 금색 견갑과,
금장 장식이 되어있는 흑색 제복이 보입니다.
역시나 군데군데 피가 묻어있고 헤져있습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 ... (아무 말 없이 잠시 그 자리에 선 채로 떨리는 동공으로 옷가지를 응시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잠시 시찰을 나가겠다 해 놓고, 옷의 색깔이 싹 바뀐 채 돌아와서는 내 목에 칼을 겨누었었다. 그때 사라진 옷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어 여기 걸려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잠시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혼란을 애써 잠재우고 다시 주변을 둘러 본다. 옷장에 더 살펴볼 것은 없는가?)
:아이디어 판정.
베르너 L. 퍼디난드:
보통 헤진 옷가지는 버리지 않던가요.
왜 굳이 이걸 여기에 모아뒀을까요?
지금의 그에게는 의미 없는 것들이 아니던가요.
...
옷가지를 뒤적여보면,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옷가지를 뒤적여 본다.)
제복의 안 주머니에서 작은 열쇠를 발견합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열쇠를 챙긴다.)
:열쇠 습득.
베르너 L. 퍼디난드:(옷가지에 더 뒤져볼 것은 없나?)
별다른 것은 없어보입니다.
브로치가 달리지 않은 하얀 망토가,
어쩐지...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옷장에 더 이상 살펴볼 것은 없나?)
더는 없어보입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옷장에서 습득한 열쇠로 서랍장의 첫 번째 열쇠를 열어 본다.)
첫번째 서랍장의 열쇠 홀에 열쇠를 끼워맞추자
딱 맞게 들어갑니다.
찰칵,
작은 소리와 함께 잠금이 풀립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서랍을 열어 안을 확인한다.)
서랍장의 안에는...
손바닥 만한 작은 함이 있습니다.
겉면은 검은색이며, 금장이 눈에 띕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함을 꺼내 열어 본다.)
달칵,
작은 소리와 함께 함을 열어보자...
그 안에는
여전히 빛을 잃지 않은 은제 막대 귀걸이와,
물빛으로 선명히 빛나는 아쿠아마린 브로치가 들어있습니다.
전부, 당신이 지닌 것과 짝을 갖추는 것입니다.
그리고 곱게 접힌 쪽지가 들어 있군요.
베르너 L. 퍼디난드:(쪽지를 열어 내용을 확인한다.)
팔락,
쪽지를 펼쳐 내용을 확인합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
나는 안톤 셀레스가 아니다.
아무리 당신을 위한다고 해도,
지금의 모습으론 감히 당신께 충성을 맹세한 기사라 할 수 없기에.
_______________________
어떻게 하겠습니까?
베르너 L. 퍼디난드:... ... (쪽지를 쥔 손이 파르르 떨린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당신은...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함을 챙겨갈까요? 물론 두고갈 수도 있습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일단... 내가 챙기는 것이 낫지 않을까? 혹시 모르니 함을 챙긴다.)
당신은 함을 챙겼습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세 번째 서랍은 열어볼 방법이 없는가?)
현재로서는 없어보입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이제 남은 곳은... 침대겠지? 침대를 확인해 본다.)
침대로 가까이 다가가자,
옅게 앓는 소리가 더 선명히 들립니다.
앓는 신음의 근원은... 침대에 고이 누워있는 안톤이었네요.
식은땀에 젖어 뺨에 눌어붙은 머리칼,
상기되어 붉어진 얼굴과
굳게 다물고 있으면서도
이따금씩 인상을 찌푸리며 앓는 소리를 내뱉는 입이
누가 봐도 그가 아픈 상태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열병이라도 앓는 걸까요?
그러나
안톤의 곁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어쩐지 안쓰럽네요.
:베르너, 관찰 롤.
베르너 L. 퍼디난드:
그러고 보니 당신께 올 때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가벼운 옷차림입니다.
복장은 목을 가리지도 않았고,
손에 장갑을 끼지도 않았습니다.
이불 사이로 드러난 팔도 보이네요.
...
더 자세히 볼까요?
베르너 L. 퍼디난드:(더 자세히 살펴본다.)
그를 다시 한 번 살펴보면...
온통 상처투성이입니다.
검으로 베인 흔적,
찔린 듯한 흉터,
몸 곳곳에 새겨진 상처들은 대부분 깊습니다.
... 얼굴을 제외한 모든 곳에 상처가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이상하네요,
안톤의 몸에는 본래도 오래된 흉터들이 있기는 했다지만…
당신이 기억하던 것보다도 수가 훨배는 많습니다.
유독 보이는 상처와 흉들은
비교적 최근에 생긴 것 으로 보입니다.
대체 어디서 이런...
보이는 흔적들은 그의 몸이 꽤나 고생을 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 ...
조금 멍해진 머리로 그의 모습을 살피던 중,
안톤이 뒤척이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러다 깨기라도 하면 어떡하죠?
갇혀있던 곳에서 빠져나와
안톤의 방에 몰래 들어왔다는 걸 들키면 ...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 눈에 보입니다.
그는 금방이라도 잠에서 깰 것만 같습니다.
서둘러 빠져나가는 게 좋겠네요.
돌아갈까요?
베르너 L. 퍼디난드:(몸을 저 모양 저 꼴로 해 놓고 누가 누구를 감시한다는 것인가. 당신을 걱정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이 한스럽다. 이를 꾹 악물고 서둘러 안톤의 방을 빠져나와 원래 갇혀 있던 방으로 향한다.)
당신을 안톤이 깨기전에 서둘러 조용히 그의 방을 빠져나옵니다.
다시 되돌아온 방에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문을 닫고...
창 밖을 보니 이미 어둑해져있네요.
슬슬 잠자리에 드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 것 때문에인지, 유독 생각이 많아지지만...
우선은 복잡함은 전부 뒤로하고
그저 잠을 청합니다.
밤하늘이 유독 반짝이는 것도 같습니다.
...
..
.
*
어제부로 다시 날은 밝아오고,
시간은 천천히 흘러갑니다.
날이 밝은지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요.
일어난 뒤로 기다려보았지만
역시 안톤은 방에 오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손에 들려진 검은 함이 눈에 들어옵니다.
안에는...
이전에 그와 함께 했던 흔적들이 가득 매여있습니다.
의문스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는 당신을 배신했으면서도
왜 이걸 그렇게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었던 걸까요.
그가 어떤 심정으로 이걸 넣어뒀을지
감히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길래.
...
브로치와 귀걸이를 가만 바라보던 당신의 눈에,
함 안에 깔려있는 푹신한 재질의 하얀 깔개와
함의 벽면이 접해있는 그 틈 사이로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 (반짝이는 것을 꺼내 본다.)
꺼내서 확인해보니...
끼워져있던 것은 선명하게 반짝이는
조그마한 은색 열쇠입니다.
그러고보니 열리지 않던 서랍이 있던 것이 기억납니다.
이건 그 열쇠인걸까요?
베르너 L. 퍼디난드:(바로 안톤의 방으로 향해 확인해볼 수 있는가?)
가능합니다.
문은 어제후로 안톤이나, 다른 누군가가 드나들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열려있는 상태입니다.
어제와 같이 성 안을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안톤의 방으로 향해 문을 조심스레 열어 본다.)
방 안에서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조심스레 문을 열어봅니다.
어제와는 달리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외출을 한 건지는 몰라도 좋은 기회네요.
베르너 L. 퍼디난드:(서랍장으로 향해 세 번째 서랍에 열쇠를 끼워넣어 돌려 본다.)
열쇠는 딱 맞게 들어갑니다.
찰칵,
작은 소리와 함게 잠금쇠가 풀립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서랍 안을 확인한다.)
서랍을 열어 안을 보니...
끝이 해진 낡은 종이 뭉치가 있습니다.
여러 장을 한데 묶어 일기장 같은 형식이 되어 있습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종이 뭉치의 내용을 확인한다.)
종이 뭉치는 일기장 형식입니다.
한 장씩 넘겨가며 읽을 수 있습니다.
-
펼쳐진 첫 장을 보자마자,
한 눈에 보아도, 익숙한 필체가 눈에 들어옵니다.
얼마 읽어볼 필요도 없이, 눈에 보이는 필체만으로도
당신은 이것을 안톤이 썼다고 단번에 알아차립니다.
-
첫번째 장.
근래에 이상한 소문이 자주 들려오고 있다.
왕이 성 안에 들어온 이들을 고문하다가 죽이는 것이 아니냐, 라는...
터무니없는 소문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사람이 죽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인지라.
사람들의 판단력이 흐려진 것 같다.
나의 주군께서 이 일을 듣기라도 한다면...
가뜩이나 일이 많은데, 거기에 근심마저 깊어질 것이 뻔하다.
베르너 님의 귀에 이 일에 대한 것이 더 들어가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일을 해결해야 할 것이다.
...
하지만 성 안의 병력을 보냈다가는...
왕이 사람들의 입을 막으려 한다며 평판이 더 나빠질 것이 분명하겠지.
그러니 내일부터 혼자 시찰을 나가보는 편이 나을 듯 싶다.
베르너 님께서 알게 된다면 무모한 짓이라고 말리실테고.
우선... 죄송스러우나 현재로선 이를 숨기는 편이 나을 듯 싶다.
-
:페이지를 넘기려면, 넘긴다는 지문을 작성해주세요.
베르너 L. 퍼디난드:(페이지를 넘긴다.)
두 번째 장.
생각보다 소문의 진상을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 일에 대해 떠들고 있었고...,
천천히 물어가다 보면 첫 시작에 도달하는 것은 금방이었으니.
...사교도가 이곳에까지 손을 뻗고 있었다고 한다.
어느 시점부터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것이 지금까지도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
베르너 님께... 이 일을 말씀드리는 것이 좋을까?
-
베르너 L. 퍼디난드:(페이지를 넘긴다.)
다음 장으로 넘겨보니,
한동안 일기를 쓰지 않은 듯
세 번째 장의 날짜는 한참 후의 것입니다.
세 번째 장.
보여지는 세 번째 장은,
힘을 주어 눌러쓴 건지 잉크는 번져있고, 글씨는 난잡합니다.
-
손이 엉망이 된 탓에, 글씨를 제대로 쓰기가 힘들다.
앞으로는 검을 제대로 잡을 수 있을지조차도 잘 모르겠다.
몸 상태는 점점 더 나빠져가고만 있고,
각혈하거나 밤에 열병을 앓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그 날까지는 어떻게든 버텨야 해.
...
...
...
베르너 님께는 딱히 드릴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오랜만에 뵌 주군께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는데...
나는 이런 행색으로 그분의 앞에,
... 차마 한 마디 조차도, 함부로 입을 열 수가 없었어.
그래,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입을 열려고만 하면 당신께 다정히 대했던,
당신께 맹세하고
당신을 사랑하던
그 과거가 떠올라서.
그래서 괴롭다.
당장에라도 죽고 싶을정도로.
그 때의 나는 이미 당신을 배신하며 내 속에서 죽었는데도.
...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들 중에,
그 어떤 것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그 사이에 내가 한 말이라고는,
...
... 이곳에까지 적을 필요는 없겠지.
괴롭다.
당신께 그런 말을,
그런 행동을,
그런.
그런.
그런...
그 순간의 나를 죽이고 싶을정도로 괴로워.
지금의 내 모습도.
하지만 아직이다.
아직,아직…
아직.
아직은 살아야 해.
당장에라도 당신이 보고 싶다.
당신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아.
당신의 표정이 지워지지 않아요.
그런 표정은 보고싶지 않았는데,
그런 표정을 짓게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 그런…
-
뒤로 갈수록 글씨가 더욱 엉망이 되다가
잉크 자국이 난잡하게 흩어진채로 이번 장의 내용이 끝났습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떨리는 손으로 페이지를 넘긴다.)
-
앞선 장 보다 이른 날짜의 것으로 보입니다.
종이의 질감이 다르고 휘갈겨 쓴 것을 보니
다른 곳에서 급하게 적은 내용인 거 같네요.
네 번째 장.
나는 멍청했고,
지나치게 내 실력에 있어 자만했으며,
그들을 지나치게 무시했다.
그것이 내게 독이 될 줄은 몰랐다.
...
왕의 기사라고는 해도 나는 한 명뿐이었고,
내가 제 아무리 방어에 아무리 특출나다 해도…
단번에 많은 이들을 이겨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것 외에도 어째서인지...
사교도들의 거점에 발을 들이면서부터
머릿속이 어지러워 제대로 검을 들기조차 힘들었다.
...그들은,
내가 왕의 기사라는 것을 알아본 것 같다.
-
베르너 L. 퍼디난드:(페이지를 넘긴다.)
다섯 번째 장.
다섯 번째 장부터는 네 번째 장에서 이어지는 내용인 듯합니다.
날짜가 띄엄띄엄합니다.
군데군데 마른 핏자국이 보입니다.
-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머릿속이 난잡해져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다.
금방이라도 아득해질 것 같은 정신을 붙잡으려
스스로 상처를 내다보니 몸 상태가 말이 아니다.
몸에 해를 끼쳐서 그런 건가,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내 상태가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사교도들은 거점에 발을 들인 자들 중,
정신을 잃고 광기에 빠진 자들을 고의적으로 성에 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금방 죽음에 이르렀고, 그 피해는 오롯이…
...
모든 게 이들이 바라던 대로 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곳에 있는 나 역시,
언젠가는 광기에 빠지게 되는 건가?
베르너 님, 저는… ...
-
베르너 L. 퍼디난드:... ... (이를 빠득 갈고는 페이지를 넘긴다.)
여섯 번째 장.
주군께서는 잘 지내시고 계실까.
이럴 줄 알았다면 간단하게라도 보고를 했어야 했는데.
말씀이라도 전하고 왔어야 했는데…
...
부디 제 걱정은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차라리 저를 버리시고 다른 이를 당신의 기사로 세우시어…
...
...
내가 원래부터 없던 사람인 것처럼
전과 같은 나날을 보내고 계신다면,
그렇게라도 평안히 지내고 계시기를 바라는데…
뒷글자의 필체는 유독 엉망입니다.
알아보기가 힘드네요.
:베르너, 관찰 롤.
베르너 L. 퍼디난드:
거짓말이야.
당신이 너무 그립습니다.
보고싶어요.
나는, 아직 당신의 기사로 남고싶어.
오직 나만이 당신을
...
-
베르너 L. 퍼디난드:(아까보다 손의 흔들림이 크다. 동공 또한 마찬가지로 흔들린다. 차게 식은 표정으로 말없이 페이지를 넘긴다.)
일곱 번째 장.
… 그들을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필히 왕의 자리를 빼앗고
주군을 죽음으로 몰아세울 것이다.
그 분께서 죽는 모습만은 볼 수가 없다.
베르너 님께선
살아야만 한다.
당신 만큼은.
당신이 죽는 것은…
-
베르너 L. 퍼디난드:(페이지를 넘긴다.)
여덟 번째 장.
베르너 님.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옳은 일인지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제가 하려는 짓이
필히 당신을 무너트릴 것이라는게 두렵습니다.
-
베르너 L. 퍼디난드:(페이지를 넘긴다.)
아홉 번째 장.
사람을 죽였다.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이 내 검에 의해 죽었다.
아무런 죄책감도 들지 않아.
아무런 기분도…
...그저 내 모습에 소름이 끼친다.
-
베르너 L. 퍼디난드:(페이지를 넘긴다.)
열 번째 장.
드디어 그들의 신뢰를 얻어냈다.
주군, 다시 뵐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만은…
...
-
베르너 L. 퍼디난드:(페이지를 넘긴다.)
마지막 페이지인 것으로 보이는 장이 나타납니다.
힘주어 눌러쓴 글씨가 눈에 들어옵니다.
열 한번째 장.
부디 저를 용서치 말아주세요.
-
정확히 한 문장만이 그 자리를 홀로 채우고 있습니다.
내용을 전부 읽고나니,
이 내용대로라면 ...
첫 번째 장과 두 번째 장은 안톤이 사라지기 전에 쓴 것,
네 번째 장부터 열 번째 장까지는
사라진 기간 동안 쓴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세 번째 장은 이곳에 돌아와 혁명을 일으키고 난 뒤 쓴 거겠군요.
...
성에 찾아온 사람들은 모두 광기에 빠져있었고,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이 당신의 소행이라고 생각해
군주로서의 평판은 낮아져만 갔습니다.
그리고 그 끝은 폭군이 되어 혁명을 받아들이는 것이었죠.
온몸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던 사람들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모든 내용을 읽고 기억해낸 베르너,
이성치 체크.
베르너 L. 퍼디난드:
1D3.
베르너 L. 퍼디난드:rolling 1d3
(
1
)
=1
머리가 조금 혼란스럽습니다.
이성치 -1 감소.
이게 정말 사실인 걸까요?
안톤은 사라진 기간 동안 사교도들에게 잡혀있던 거고,
그로 인해 성에 찾아왔던 다른 이들과 ...
같은 끝을 맞이하게 되는 걸까요?
...
그는 여전히 당신을 주군이라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혁명을 일으킨 이유는,
어디에도 적혀있지 않습니다.
무언가 계획이나, 생각이 있는 것 같은데…
그저 일기장에 적혀있는 '그 날'에
무슨 일이 생길 거라는 짐작만 갈 뿐,
정확한 정보는 알 수가 없습니다.
...
일기의 내용이 계속 신경 쓰여 멍하니 있던 도중
방문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베르너, 듣기 롤.
베르너 L. 퍼디난드:
작게 들리는 말소리는...
안톤의 목소리입니다.
어딘가에 몸을 숨겨야만 합니다.
:베르너, 관찰 롤.
베르너 L. 퍼디난드:
:행운 롤.
베르너 L. 퍼디난드:
:...?
베르너 L. 퍼디난드:(...)
:아이디어 판정!
베르너 L. 퍼디난드:
:OK..
그러고보니 숨을만한 공간으로 떠오르는 장소가 있습니다.
꽤 한적한 공간이 남아있었던...
옷장이요.
마침 안에는 옷이 거의 없으니 몸을 숨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옷장으로 들어가... ... 몸을 숨긴다...)
우선은 어쩔 수 없습니다.
들키는 편보단... 이 편이 낫겠죠.
옷장에 들어서서 숨기 무섭게,
방 문이 열리는 소리와 발자국 소리, 그리고 목소리가 들립니다.
" 알아서 잘 하고 있잖습니까. 대체 언제까지 간섭할 셈입니까!!! "
신경질적인 발걸음 소리와 함께
안톤의 고함 소리가 들려옵니다.
틈을 통해 확인하니 방에 들어온 사람은 ...
안톤을 포함해 총 두 명입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길래,
저렇게까지 화를 내는 걸까요?
"의심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
"나서서 폭군의 감시를 맡겠다고 한 것도 그렇고,"
" 작작하십시오. 내가 이 일 때문에 죽인 사람이 몇인데... "
안톤이 하던 말을 멈추고 몸을 움츠립니다.
입을 가리고 연신 기침을 하다가
손에 묻은 피를 보고는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은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런 몸으로 더 버틸 수 있긴 하겠나?"
"일이 거의 끝났으니 넌 이제 쓸모 없어졌어."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베르너도 너 같은 배신자를 받아줄 리는 없겠고."
마지막 문장에, 안톤의 표정이 더 험악해집니다.
" 적당히 하고 닥쳐. ... 스스로도 알고 있으니. "
"베르너가 죽으면 너도 끝이야."
"내일 네 표정은 볼만하겠군. "
아.
?
순간, 눈 앞에 붉은 것이 튑니다.
그것은 한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안톤이 들고 있던 검으로 앞에 있던 사람을 베어버린 것.
쿠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앞의 사람이 쓰러지고
그의 충혈된 금안이 숨어있던 당신과 마주쳤습니다.
안톤 셀레스:... 베르너 님?
머릿 속에 벗어나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그는 제정신이 아닙니다.
눈이 마주쳤다는 사실에,
몸이 굳을새도, 생각을 할 새도 없이.
당신은 급히 그곳에서 벗어나 밖으로 급하게 빠져나갑니다.
그제야 안톤이 정신이 들은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뒤늦게 “베르너 님!!” 하고.
뒤에서 다급하게 당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이전마냥, 당신을 부르는 안톤을 무시한 채
방으로 돌아가, 사뭇 떨리는 손으로 문을 단단히 잡고 섰습니다.
...
자비롭고 선하던 그 안톤 셀레스가,
무자비하게 사람을 죽인 건가요?
정말로?
안톤은 대체 언제부터 이리도 쉽게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가 되어있던 걸까요?
안톤 셀레스의 살인 현장을 목격한 베르너,
이성치 체크.
베르너 L. 퍼디난드:
앞의 사람은... 뭐...
죽을만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안톤의 저런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긴 합니다.
1D2.
베르너 L. 퍼디난드:rolling 1d2
(
1
)
=1
이성치 -1 감소.
...
잠시 후,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문 틈이 강제로 벌려집니다.
틈새로 탁한 금안이 당신과 마주치고,
당신이 문을 잡고 있다는 걸 눈치챈 안톤이
손을 놓은 모양인지 문이 다시 닫힙니다.
닫힌 문 뒤로 몰아쉬는 숨소리만이 들려옵니다.
" ... ... ... 열어주십시오. "
그의 침착한 목소리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들립니다.
정말 이 문을 열어도 되는 걸까요?
베르너 L. 퍼디난드:... ...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문을 열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안톤 셀레스:베르너 님. ...접니다. 당신께는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을 테니, 이 문을 열어주십시오. (문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침착했으나, 그것이 떨림을 감추기에는 역부족이었을지도 몰랐다.)
베르너 L. 퍼디난드:... 의도가 무엇입니까, 안톤 셀레스. 알고 계시잖습니까. 적어도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당신의 말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마지막 말을 내뱉자 문 손잡이를 쥔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렇게 한참을 정적 속에서 고민하다가 마찬가지로 흔들리는 목소리로 작게 한 마디를 더 내뱉었다.) ... ... 검이라도 버리고 들어오십시오. (그렇게 말한 뒤 문 손잡이에서 손을 놓았다.)
안톤 셀레스:... ... 의도라... (조금 헛웃음이 나왔을지도 몰랐다. 문 너머에 있는 그의 표정은 당신에게 보이지 않았을 테니까, 그것이 조소일 것이라고, 혹은 자조섞인 웃음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방법 밖에는 없겠지. 그는 굳이 문을 열지 않았다. 정적과 침묵 속에서, 지금 당신의 앞에서 자신이 어떤 위협이 되는지를 그가 모를리가 없었으니까. 당신이 있는 문 너머에서 짧은 탄식이 작게 들렸다가 뒤이어 낮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 보셨습니까.
안톤의 마지막 말에, 소름이 돋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그건 잘못 본 것 따위가 아니었습니다.
안톤은 분명 사람을 죽였고,
가장 먼저 눈이 마주친 당신에게 왔습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 ... (당신의 마지막 말에 온 몸을 휘감는 오싹함을 느낀다. 그리고 다시 손잡이를 콱 쥐어 손에 힘을 주었다. 일기장을 읽고 나서 잠깐 너무 방심하고 있었다. 내 앞의 저 자는 지금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상태인지 확신할 수 없다. 믿어서는 안 된다. 목소리에 떨림을 감춘다. 그리고 의문감을 섞어 담담하게 잘 포장된 거짓말을 내뱉는다.) ... 무엇을 말입니까.
안톤 셀레스:... ...모를거라 생각하지 않으시지 않습니까... (문 너머에서 당신에게 들리는 목소리는 어쩐지 비탄에 잠겨, 금방이라도 그것에 잠식 될 것만 같았다. 문으로 가려진 탓에 그의 표정이 보이지 않아 다행일지도 모르고, 그게 아니라 오히려 무언가를 놓칠지도 모르지. 들려오는 목소리는 그 누가 들어도 선명하게 떨리고 있음이 느껴졌다. 이어 들리는 것은... 조금은 처절한, 절망섞인 중얼임이었던가.) ... 당신께만은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베르너, 듣기 롤.
베르너 L. 퍼디난드:
(와... 진짜....)
:...흠... 한번 더 가능합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
말 끝에, 아주 작게...
'주군', 이라는 칭호가 붙었던 것도 같습니다.
항상 당신을 부르던 그 어조 그대로였습니다.
...
잠시간 정적이 입니다.
그리고, 이윽고 차분히 가다듬어진 목소리가 다시 들립니다.
"오늘은 이만 가보고 내일 아침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 죄송합니다."
문 너머로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가 들립니다.
무겁게 느껴졌던건, 기분 탓이었을까요.
굳게 잡은 문 손잡이가 눈에 들어옵니다만...
문을 열지 않은 것이 못할 행동도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요, 그의 상태는...
분명히 정상이 아니라고 느껴졌으니까요.
당신은 합리적으로 행동했을 뿐입니다.
...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고나서야,
아주 약간의, 안도감이 드는 것도 같습니다.
오늘은 어째, 어제보다 조금 더 피곤한 것도 같습니다.
몰려오는 두통과,
귓가에 맴도는 안톤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당신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잠자리에 듭니다.
...
..
.
*
아직 공기가 차가운...
이른 새벽입니다.
누군가가 방문을 조용히 두드립니다.
작은 소리였음에도
어제의 일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이루어서인지,
당신의 청각은 이를 잡아내고
눈은 금방 뜨입니다.
이번에는, 문을 열어볼까요?
베르너 L. 퍼디난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문으로 걸어가고는 문 손잡이를 돌려 연다.)
문을 열자 보이는 사람은 ...
안톤 셀레스입니다.
어제 보이던 분위기나, 목소리의 떨림은 없었던 것 마냥
전과 같은 무표정한 얼굴입니다.
하지만,
그의 손에 들린 검을 보는 순간.
당신은 무의식적으로 어제의 일이 기억나,
두어걸음 물러섭니다.
그런 당신의 모습에도, 그는 망설임 없이 방 안에 들어와
방문을 잠그고는 당신에게 성큼 다가서더니
"결례를 범해 죄송합니다."
하며, 당신의 손에 검을 쥐어줍니다.
... 이를 가지고 이곳에서 도망치란 말과 함께요.
:베르너, 관찰 롤.
베르너 L. 퍼디난드:
가드에 박힌 보석이 빛납니다.
이건...
당신의 방에서 본,
안톤이 목숨처럼 지니던,
항상 가지고 다니던 바로 그 검입니다.
안톤 셀레스:... (잠시간 침묵했다가, 느릿하게 손을 떼며 입을 열었다.) 현명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오늘 날이 밝으면... 당신의 사형이 집행될 겁니다. 그러니 그전에 이곳을 빠져나가십시오.
사형이라니요?
설마, 어제 안톤과 함께 있던 사람이 말했던 게 ...
이것과 관련 있었던 건가요?
:베르너, 아이디어 롤.
베르너 L. 퍼디난드:
문득 일기장의 내용이 떠오릅니다.
어쩌면...
안톤의 일기장에 써져있던 그 날이
오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검을 바라보던 고개를 들어,
안톤에게로 시선을 마주하자.
안톤은 이미 모든 걸 준비해둔 것 마냥,
전혀 당황하지 않은 얼굴입니다.
...
옷 틈사이로 허술하게 드러난 목,
양 손에 낀 것은
손을 모두 덮어내는 검은 장갑이 아니라...,
흰 장갑과, 흑색의 반장갑.
얼핏 보면, 그의 표정은 체념 한 것처럼 보이는 듯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기억합니다.
단 한 순간. 분명하게.
당신에게 검을 건넬 때만큼은 굳은 의지에 가득 차 보였다는 걸.
...
눈 앞의 표정은, 전과 같이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당신이 시선을 똑바로 바라보려 하자,
고의적으로 당신의 시선을 피하는 것이 보입니다.
지금이 정말 마지막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어디서부터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까? 가장 손 떨리도록 놀랐던 것이 언제였을까? 지끈거리는 두통에 눈을 내리감아 버리고 찬찬히 기억을 되짚는다. 그래, 어제였지. 당신의 일기를 읽었을 때였다. 모든 것을 알게 되고 경악을 금치 못했던 것이 기억난다. 얼마나 많은 감정이 한꺼번에 몰아쳤는지 다시는 상상할 수도 없다. 지금까지 나를 어지럽혔던 모든 혼란이 정리됨과 동시에 배로 불어나는 순간이었다. 사교도라. 그게 내가 억울하게 이 모양 이 꼴이 된 원인이랬나. 어째 아무리 정치를 대단하게 해내도 그런 걸로는 운명의 눈에 잘 들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이 세상에서는 반드시 합리적이고 납득할 수 있는 일들만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일어나는 것이 전쟁과 약탈, 반란과 참사니까. 일기를 읽어 보고 나서, 잠시간 당신을 더 주의 깊게 살피지 않은 것에 후회하고 내게 이를 말해주지 않은 당신을 원망했었다. 내게 말해 주었다면, 당신이 홀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내가 어떻게든 해결할 수도 있을 문제였을 텐데. 하지만 너무 늦었고, 이제 와서는 소용 없는 생각임을 알기에 그저 생각을 접었다. 당신은 언제나 모든 상황을 나를 바라보며 생각하고, 판단하며, 오롯이 내게 충성하는 기사였고, 그때도 그러한 판단에 따라 행동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기에. 그리고 당신의 선택을 존중하기에.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당신이 나를 배신했든, 배신하지 않았든 나는 그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해결 방법을 찾을 뿐이다. 설령 그것이 제아무리 재앙 같은 운명이라 할지라도.
머릿속으로 짧은 찰나가 스쳐지나간다. 지금 회상하고 있던 기억보다도 조금 더 뒤에 있는 과거, 침대에 힘없이 누워 열병을 앓는 당신을 보았을 때. 나는 당신을 불신하는 것에 실패했었다. 온 몸에 상처를 입은 채 고통스러워하는 당신에게 괜찮냐며 걱정스레 묻지 못한다는 사실이 쓰라렸다. 당신의 머리칼을 한 번이라도 쓰다듬어 줄 수 없다는 사실이 심장을 짓이겼다. 쓸쓸해 보이는 당신의 곁에 있어 줄 수 없다는 사실이 끔찍하게 아팠다.
일기를 읽고 나서 나는 안심했었다. 어떤 상황이 내 앞에 닥쳐오더라도, 다시 어떤 혼란을 맞더라도 당신만 내 곁에서 떠나가지 않는다면 버텨낼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 믿음을 다시 온전히 돌려받은 기분에 당장에라도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당신에게서 도망치고 나서도 문을 쥔 손잡이를 놓았었다. 그러나 다음에 들려오는 당신의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혼란에 휩싸였다. 문 앞에 서 있는 당신이 일기를 적어내려갔던 그 사람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시 생각하면 우스운 생각이긴 하다. 당신이 안톤 셀레스가 아니면 누구일까.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침대에 누워 옅은 선잠을 취했었다. 그리고 다시 지금, 눈을 느리게 떠 단단한 결의를 굳힌 눈빛으로 내게 검을 건네는 당신을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똑바로 바라보았다. 당신은 안톤 셀레스다. 누가 뭐래도 내게 가장 충성하는 나의 기사. 당신은 아직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가? 그 어떤 폭동도, 혁명도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 수 없다.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당신뿐이다. 당신이 건넨 검을 받아들고는 한 점 떨림 없는 목소리로 담담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눈치챘을 지도 모르겠지만, 당신의 방에 있는 것들을 좀 뒤지고 읽었습니다. 사적인 것을 건드리는 것은 나조차도 싫어하는 일이지만... 상황이 상황이었으니 부디 이해해 주세요.
어리석은 짓을 벌였더군요. 제발 모든 일을 혼자 짊어지려 하지 말라고 누누히 말했던 기억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소용 없는 말이겠죠. 당장 눈앞에 닥쳐오는 것은 내 사형 집행이니까요. 일기장도 읽었고, 당신이 내게 왜 그런 태도를 보였는지, 왜 나를 배신하려 했는지 대충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를 배신한 적이 없지 않습니까. 결국 당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위해, 나에게 충성하는 기사가 아니었습니까.
(그 말을 마치며, 건네받았던 당신의 검을 다시 당신의 손에 쥐어 주었다.) 안톤 셀레스. 끝까지 내게 충성하기로 맹세했다면, 정말로 나를 배신할 생각이 없다면, 나를 혼자 두지 마십시오. 함께 걷기로 한 길을 홀로 떠나보내는 것만큼 죄스러운 배신은 없습니다. 혼자 있을 수 없습니다.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도 함께 삽니다. 혼자 도망쳐 봤자 도망자의 신분으로 내가 무엇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목숨만 붙어있는 채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중간에 붙잡힐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하지만. 당신과 함께라면. 도망자로 쫓겨나 사는 신세가 된다고 하더라도, 설령 함께 잡혀 사이좋게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다고 해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어떤 혼란이 닥쳐오더라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당신이 내 의지고, 당신이 내 신념이며, 당신이 내 행복입니다. 어떤 삶이든, 당신과 함께합니다. 그게 바로 당신이 내게 맹세하고, 내가 당신으로부터 받아들인 당신의 충성입니다.
안톤 셀레스:방을 뒤지셨다라... ...하긴, 그렇네요. 몇가지가 없어졌더군요. 그런데에 능하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만. (고개를 기울였다. 시선의 끝은 당신의 브로치에 향해있다. 주군, 베르너 님. 베르너. 당신의 이름을 속으로 되뇌이다가 눈을 감는다. 눈치채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당신이 그 방에 있었다는 것도, 어제 당신이 나간 후로 열은 서랍이 비어있었던 것도. 분명히 잠궈뒀던 서랍들의 잠금쇠가 풀려있었던 것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도망은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당신이 내 앞에서 죽는 것은 내가 용납하지 못한다. 손에 쥐어진 검이 무겁게 느껴진다. 고개를 들고, 똑바로 당신의 눈을 마주하며) 베르너 L. 퍼디난드. 우스운 말씀을 하십니다. 애초에 내가 당신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같잖은 연민일 뿐이지, 내게 당신에 대한 충성따윈 하나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다시금 쥐어진 검을 바라보다, 주먹을 억세게 쥔다. 조금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혼자두지 말라 하셨습니까. 어찌 이리 어린 말을 하십니까.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것은 지금 당신이 아닙니까.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에게 실망했다고. 당신은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고, 나 역시도 당신이 알던 그 망할 안톤 셀레스가 아닙니다. 당신같은 주군은 제 위에 둘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니 가십시오. 나는 이미 당신에게 맹세한 충성을 버린 자입니다. 당신이 하는 말 따위는 듣지 않을 것이고, 당신을 이미 배신했는데 한차례의 배신이 두번의 배신을 이끌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말을 하는 목소리는 차다. 당신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온기한점 서려있지 않는다.) 퍼디난드. 당신의 안톤 셀레스는 오래전에 죽었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현명하지 못한 판단을 할만한 사람이 아니었을 텐데요, 그렇지 않습니까. 언제 누군가를 그렇게 믿으셨다고, 그 얄팍한 믿음에 기대어 목숨을 버릴 생각까지 하십니까. 당신의 목숨이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중한지 아시면서,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왜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까, 여즉 해온 것을 전부 수포로 되돌리실 생각입니까.
(입술을 꾹 짓이겨 물었다.) 안 됩니다. 나는 당신의 의지가 아니고, 나의 신념은 추락했으며, 그를 붙잡게되는 당신의 행복마저 무너지게 될겁니다. 나가십시오. 앞으로 나아가시는 겁니다. 내가 아무런 생각이 없어서, 마냥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나아가 당신의 살길을 도모하고, 나는 앞으로 나의 살길을 도모하면 되는겁니다. 내 옆에 있어봐야, 당신의 앞날은 아무런 빛도 들지 않는 오롯한 암흑일 뿐이란 말입니다. 당신이 내 옆에 있는 것이 불행이 될겁니다. 나는 당신이 살기를 바라는데, 그럼에도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대체 왜... 제발, 저를 죽이지 마십시오. 제가 당신께 충성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부디. 부디,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을, 당신을... 제가 왜 이런 몸이 되어도 당신을 왜 내가 포기하지 못하는데... 내가 왜 당신을 포기하지 못하는지 알잖아...!!! (언성이 높아졌다. 깨닫자마자 눈이 커진다. 언제 이렇게 감정적이 되었지, 입을 손으로 틀어막는다. 숨이 찬다. 그 이상으로 막힌다. 지금 이 순간이 이전의 그 어떤 순간보다도 괴로워서, 밀려올라오는 기침에 몸을 움츠린다. 한참을 기침을 하고 얕게 신음을 흘리다가, 손에 묻어나는 핏물을 보고 다시 주먹을 쥐어. 다시 고개를 들어 당신을 마주한다.) ...베르너. .... ...가십시오. 이게 제가 할 말입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같잖은 연민, 어리석은 행동, 실망. ... ... 시퍼렇게 날이 선 비수들이 심장을 스쳐 상처를 내고 지나간다. 하지만 저 말을 내게 하는 당신이 더 아플 것을 안다. 확신한다. 반드시 그러리라고 굳게 믿는다. 일부러 내뱉는 말에 냉기를 담았다.) 현명한 판단 말입니까? 그러면 같잖은 연민으로 내게 이제는 필요없는 검을 버리고 도망치라고 보내주는 것이 당신이 말한 그 현명한 판단입니까? 말하지 않았습니까, 도망자 신세로 살아 봤자 죽느니만 못합니다. 또한, 잡히는 즉시 목이 베일 게 뻔합니다. 그걸 모르셔서 하는 말씀입니까? 그리고... 사형수가 도망친 것이 발각되면 가장 먼저 책임을 묻게 될 것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이 진정으로 나를 더이상 주군으로 생각하지 않고, 나를 섬기지 않았다면 그 연민에 대한 피해를 고스란히 담을 걸 뻔히 알면서도 이딴 헛짓거리는 입에 담을 수 없었을 겁니다. (언행이 거칠어진다.) 알고 있을 텐데요, 나는 더이상 당신을 불신할 수 없습니다. 당신을 불신하고, 당신을 내게서 놓는 것은 당신이 쥐고 있는 내 일부를 함께 버리는 짓입니다. 얄팍한 믿음? 웃기지 마십시오. 당신은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잠깐의 정적, 그리고 이어 오는 당신의 목소리. 나는 당신의 의지가 아니고, 나의 신념은 추락했으며, 그를 붙잡게되는 당신의 행복마저 무너지게 될겁니다. ... ... , ...베르너. .... ...가십시오. 이게 제가 할 말입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당신에게 성큼 다가와 멱살을 확 틀어쥐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안톤 셀레스. 내 충성스러운 기사여. 그대는 내게 진정으로 충성하는가? (멱살을 잡고 있는 손을 놓지 않은 채 근처에서 나머지 한 손으로 검은색 함에서 귀걸이와 브로치를 꺼내 주먹쥐었다.) 당신과 함께하며 마냥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바보같은 믿음 따위를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당신의 그 너덜너덜한 몸을 어떻게든 치료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유감이지만 나는 그대의 생각만큼 어린애는 아니야. 다만. 그저, 어차피 마지막이라면. 이미 그대도 나도 떨어질 대로 떨어진 나락이라면. 그 마지막마저 내 일평생을 함께 해 온 당신과 함께하고 싶다 생각했을 뿐이다! (언성이 높아지고, 당신을 향해 소리치는 목소리는 물기에 젖어 있었다. 말을 던지고 멱살을 쥔 손을 놓으며 쥐고 있던 당신의 귀걸이와 브로치를 건넸다.) ... ... 어린아이 같고 나약해빠진 주군이라 하여도 좋다 한 것은 당신입니다. 나와 함께하십시오. 이 나약한 나를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충성하지 못하겠다면. 이건 던져 버리십시오. 그러면 나는 당신에게서 다시 검을 빼앗아 들고 배신자를 찌릅니다. 그 이후에 내가 도망자 신세가 되어 아무 의미 없이 떠돌다 죽든, 도망치다 붙잡혀 목이 날아가든, 아니면 오늘 날이 밝은 뒤 그대로 처형대에 올라가든. 신경쓰지 마시고요.
안톤 셀레스:(날카롭게 들려오는 말들에 인상을 썼다. 당신은 도대체. 밀려오는 의문들이 저를 숨막히게 한다. 까득, 이를 갈았다. 어찌 이리 제 마음을 몰라주십니까. 어찌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당신은 이런 사람이 아니지 않았습니까, 아. 당신을 내가 이렇게 만들어 버린건가. 후회스럽다. 말하는 것이 심장을 찌르는 것만 같다.) 제가 모를리가 없지 않습니까... 제가, 그에 대한 방법도 생각하지 않고 당신께 무작정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생각 없이 행동하는 자가 아님을 당신은 똑똑히 알고 있지 않습니까. 당신이 도망친 뒤의 일을 뒤집어 씌울 사람은 누구나 있습니다. 제가 멍청하게 그걸 전부 감당할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말을 맺는 목소리는 차분했다. 헛짓이라고, 그럴리 없다. 내 행동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다. 당신에게 하는 모든 행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그래서, 그래서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인데. 당신의 통찰은 여전하다. 당신에게 굳은 믿음을 준 것이 나였다. 이것이 이렇게 돌아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옷깃이 확 틀어쥐어져 당겨지고, 멱살이 잡혀 당신에게 시선을 읽히고, 이어 당신의 목소리가 귓가를 찌른다. 내 충성스러운 기사여. 그대는 내게 진정으로 충성하는가? 들리는 질문에 속이 뒤엉킨다. 저를 잡아쥔 손이 아니라, 들려오는 말들이 제 숨통을 죄인다. 높아진 언성이, 그 안에 묻은 당신의 감정이 제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고, 그래서 이윽고 인상을 쓴다. 그래, 당신은 어리지 않다. ... 마주한 시선에서 느껴지는 당신의 의지가, 기어코 확고하다 느꼈다. 쥐어졌던 멱이 놓아지고, 숨을 가다듬고자 몸을 살짝 숙였을 터였다. 동시에 제 눈 앞에 내밀어지는 귀걸이와 브로치에, 이어 들리는 말에, 두 눈이 흔들린다. 나와 함께 하십시오. 내렸던 시선을 다시 올려 당신을 바라본다. 당신은 나를 너무 잘 안다. 너무나도. 내가 무엇에 약한지조차도. 이걸 내칠 수 있을리가 없다. 이건.... 이것 만큼은. ... ...한참의 적막이 이어졌을 터였다. 결국, 이젠 다 무너진 얼굴로 당신이 내민 것을 받아든다.) ... ...제가 버티지 못할 말씀을, 그런 행동들을 하십니다. 제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합니까. 이 제가..., 당신을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베르너 님. 당신은 제게 있어 너무도 강한 분입니다. (건네 받은 것을 씁쓸히 바라보다가, 힘주어 쥐고. 결연한 얼굴로 당신을 바라본다.) ...함께 가겠다고, 약속드리면 되겠습니까. 깨진 맹세를 다시 붙여, 당신께 다시 한 번 맹세하면 되겠습니까. 당신을 제가, ... 이 손으로 다시 붙잡으면 되겠습니까. 대답 해주십시오.
베르너 L. 퍼디난드:(당신 정도 되는 사람이 내가 도망친 뒤의 대책을 아예 마련해두지 않았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에 대한 대책이든, 당신에 대한 대책이든. 그것이 얼마나 소용있을지는 모른다. 나는 도박을 싫어했다. 아주 유구하게. 도망치고 나서 원래의 명예를 얼마나 회복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자리를 잃어버린 순간부터 여지 없이 바닥으로 끌어내려질 운명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순응할 뿐이다. 확실하지 않은 희망에 모든 걸 걸고 홀로 살아남느니 확실하고 깔끔한 죽음을 택하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굳이 대답을 꺼낼 생각을 하지 않고 이어 오는 당신의 말들을 담담하게 들었다. ... ... 내가 내민 것을 결국 집어 드는 당신을 보며 웃었다. 예상대로다. 내가 당신에게 약한 만큼, 당신도 내게 약하다. 입꼬리를 올린 채 결연한 표정의 당신과 눈을 똑바로 맞추고 대답을 내었다.) 안톤 셀레스, 맹세는 깨진 적 없었습니다. 그러니 붙잡으십시오. 함께 가겠다고 약속하십시오.
안톤 셀레스:(선명히 웃는 당신이 눈에 담긴다. 그저 따라 웃었다. 나는 유구하게도 당신에게 약할 수밖에 없다. 군신의 관계를 떠나서, 사람대 사람으로서. 당신에게 품은 감정의 골만큼. 심호흡한다. 느리게 눈을 감았다가 뜨며, 결의에 찬 얼굴로 당신을 바라본다.) 약속, 드리겠습니다. 당신이 가실 길을 함께 하겠습니다.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손을 내밀어, 당신을 손을 한차례 쥔다. 그리고, 이윽고 당신에게 시선을 맞춘다.) 베르너, 저를 믿으시지요. 부탁이 있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을겁니다. 제가 생각을 해둔 것이 있으니, 이번엔 제 부탁을 들어주십시오. 저는 한사코 당신을 이곳에서 내보내고 싶습니다. 당신의 숨이 끊어질 운명이라 할 지언정, 저는 발버둥치고 싶습니다. 이것이 제 신념이고, 당신을 향한 제 헌신이며, 충성이자, 동시에 사랑입니다. 당신께 이런 마음을 품은 것이, 당신이 제게 마음을 품게된 것이 죄가될 지언정, 저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저를 믿는 만큼, 저는 최후까지 당신을 믿습니다. 믿음에 약속드립니다. 당신을 보내고, 저도 곧 가겠습니다. 그러니 부탁드립니다. 이번 만큼은, 제 말에 따라주십시오.
베르너 L. 퍼디난드:... ... (당신의 미소와 흔들림 없는 눈빛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마주하였다.) ...믿습니다, 안톤 셀레스. (주먹을 꽉 쥐었다. 나는 당신을 믿는다. 당신을 사랑한다. 그렇기에, 그렇기에.) 당신의 신념, 당신의 헌신, 당신의 충성, 당신의 사랑. 받아들이겠습니다. 당신을 최후까지 믿습니다. 당신의 말에 따르겠습니다. 그러니... 약속, 지키시는 겁니다.
안톤은 당신의 말에 웃습니다.
아직 아침은 오지 않은 새벽,
어스름한 동이 트고있는 것이 창 밖으로 보입니다.
"가십시오, ...먼저 가계시면, 곧 가겠습니다."
당신을 바라보는 안톤의 눈빛은, 이전...
당신에게 신념을, 충성을 맹세했던 기사의 얼굴과 같습니다.
당신은 이윽고,
그를 믿은 채로.
그를 뒤로하고,
그가 안내해 준 길대로 걸어나갑니다.
...
..
.
*
성 밖에 나오자마자 한기가 느껴집니다.
평소보다 심하게 눈이 내리고 있어 앞을 분간하기가 힘들고
한 발짝씩 내딛는 발걸음도 무겁기만 합니다.
이대로라면 해가 뜨기 전에 성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못 갈 것이 분명하겠죠.
그럼에도, 안톤은 당신에게 약속했습니다.
최후까지 당신을 믿으며,
당신의 믿음에 답하겠다고.
운명에 있어 발버둥치겠다고 말입니다.
다행인지 아닌지, 내리는 눈발에 당신의 발자국은 지워집니다.
이대로 조금 더 걸음을 옮기면,
어쩌면... 정말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톤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요.
어떻게 할까요?
베르너 L. 퍼디난드:... ... (잠깐 몸을 돌려 뒤를 확인한다.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 그를 믿기로 했으니까. 나는 그를 믿으니까, 그를 사랑하니까. 그저 그의 말에 따른다. 다시 몸을 돌려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나아가라고 했었던 그의 얼굴이 기억납니다.
당신이 가실 길을 함께 하겠다고 했던 그의 표정이,
결연했던 눈빛이 기억납니다.
걸음을 옮기면 옮길수록,
눈발은 거세지고,
어느 순간에 이르러,
이윽고 온 땅이 하얗게 변해 어디로 발을 옮겨야 할지 막막해질 때 쯤.
그 순간,
흩날리는 눈발 사이로 먼 곳에서 인영이 보입니다.
:베르너, 관찰 롤.
베르너 L. 퍼디난드:
보이는 인영... 안톤일까요?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를 보아하니 저사람도...
눈 때문에 애를 먹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라.
... 아니, 그 이유가 아닌가봅니다.
다시 보니 눈에 의해서도 가려지지 못한 것이 있어요.
그 사람의 뒤에는 길게 핏자국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시하고 갈까요?
아니면... 다가가겠습니까?
:아이디어 판정 가능합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
:아....
판단이 잘 서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할까요...
인영은 눈바람 때문에인지 누구인지는... 분간이 잘 안되는 것 같습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 ... (이를 빠득 간다. 믿음을 지킨다. 끝까지 지킬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그를 믿는다. 쫓아오지조차 못 할 몸상태였다면 약속하지 않았을 것이다. 앞을 향해 묵묵히 걸어나간다.)
...
정말로?
베르너 L. 퍼디난드:... (걸음을 멈춘다. 머리가 혼란스럽다. 정말로? 정말로 이대로 걸어가도 되는가? 불안감이 엄습한다. 아니, 이제는 어찌 되어도 좋다. 저 자가 만약 그라면. 답지 않게 얄팍한 희망으로부터 행동을 옮긴다. 뒤를 돌아 누군지 알아볼 수 없는 자에게로 향한다.)
...
당신은 옮기던 걸음을 멈추고,
어쩐지 모를 불안감에 뒤를 돌아갑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하얀 눈발 사이로 비치는,
그 인영을 바라봄에,
당신은 그가 익숙한 사람임을 눈치챕니다.
핏빛으로 물들어 헤진 백색의 털망토,
어깨를 감싼 금색 견갑,
금장이 새겨진 흑색 제복.
그리고 망토에 달려 빛을 내는 물빛 브로치와...
왼편의 귀에 걸려진 은제 막대귀걸이.
이 모든 것이, 그가...
당신이 기억하던 안톤 셀레스라고 보여줍니다.
고통을 참으려는지,
제 입술을 꽉 깨물고 힘주어 발걸음을 옮기던 그는
당신을 보자마자 그자리에 굳은 것 마냥 멈춰 서고 말았습니다.
안톤 셀레스:... ...기다리고 계셨습니까..., 나아가라 했는데도...
얼굴에 묻어나는 것은 피로감. 그럼에도 표정은 여전합니다.
당신을 바라보는 시선은 얕게 흔들렸지만, 곧 제자리를 찾습니다.
피가 계속 흐르는 복부를 틀어막고 있는 손은 흉터가 가득했으나
지금은 피에 의해 그 흉터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을 바라보는 금안이 흐려지는 것이 눈에 들어오고,
이윽고,
쿨럭,
가까스로 검에 의지해 몸을 지탱하던 그는
별안간 피를 토해냅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안톤! (커다래진 동공으로 당신을 바라보다 황급히 그와의 거리를 더욱 좁혀 그를 부축한다.)
힘이 풀려 쓰러지려는 것을,
당신이 붙잡고 부축하자 가까스로 자리에 섭니다.
애처롭게 당신에게 기대어 보는 시선에서는
얼마나 많은 감정이 담겨있는걸까요.
더이상의 냉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지금 보이는 그의 모습은,
분명하게, 당신이 알고 있던 당신의 기사임이 틀림없습니다.
안톤 셀레스:... ...뒤따라 간다고 말씀... 드렸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당신에게 기댄채로 당신의 팔을 잡는다.) ...믿,믿는다지 않으셨습니까...
베르너 L. 퍼디난드:그래서 믿고 먼저 나오지 않았습니까. 내가 안 받쳐줬으면 당장 쓰러졌을 몸뚱아리를 끌고 오면서 뭘 뒤따라온다는 겁니까! 당장 내가 당신을 발견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걸어가기만 했다면... ... (걱정스러운 마음에 괜히 언성이 높아진다. 당신을 부축한 몸에 힘을 더 싣는다.)
안톤 셀레스:...주, 주군... 안 됩니다. (당신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저는 두고 가십시오, 부탁드립니다... 베르너 님... 당신을, ... 살, 살리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운명에 순응하신다 해도... 저, 저는 발버둥 칠 수 있지 않습니까... 네? 저는... 아시지 않,습니까... 이 상태로는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저를 두고..., 조금만 더 가면, 누구도 당신의 뒤를 쫓지 못할겁니다... 눈은, 당신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줄테니까요.
... 제 몸은 어차피... 망신창이였습니다..., 광기에 절어 그를 저항하고자 낸 수십의 상처들로.... ...그것을 버티다가... ...어차피 이 끝은 죽음입니다... 일기를 보셨다면, ...알, 알고 계시잖아요... 그렇죠? 베르너... (떨리는 목소리, 맞지 않는 초점으로도 가까스로 당신을 바라보며 웃는다. 흐린 시야에도 물빛 눈동자가 들어오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한다.) ...부탁합니다...
베르너 L. 퍼디난드:... ... (아. 눈앞이 새햐얘진다. 눈 때문에 흰색으로 번지는 시야가 아니라, 사고가 정지하면서 생기는 화이트 아웃. 나는 이제 무엇을, 어떻게. 어쩌다가, 왜. 당신이 손으로 쥐고 있는 몸이 파르르 떨린다. 이윽고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뜨더니 흐려진 당신의 금안을 똑바로 응시하며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안톤, 안톤 셀레스. 나는 불확실한 삶이 싫습니다. 당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압니다. 일기를 봤을 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아까도 말했던 것 같습니다. 만약 내가 이대로 당신의 죽음을 외면하고 앞으로 계속 걸어나감에 있어서 내 명예와 삶이 온전히 보장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당신을 두고 갔을 겁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잖습니까. 평생 숨어 살고 싶지 않습니다. 내 인생에도 목표와 욕망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왕에게 대접하는 만찬을 즐기다 한순간에 딱딱한 빵으로 끼니를 때우게 되고 싶지 않습니다. 이젠... 다시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내 인생은 이미 끝났습니다. 목숨만 붙어 있는다고 그것이 삶은 아닙니다. 안톤, 사랑하는 안톤. 내가 어떻게 해야 당신을 설득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당신과 함께 편안히 눈감을 수 있을까요. 저는 이제 쉬고 싶습니다. 당신과 함께요. 네?
안톤 셀레스:(당신의 말들에 이윽고 울상을 짓는다. 당신의 인생이 이미 끝났다는 그 말이, 이제는 완전히 비수로 꽂혀 들어온다. 내가 여지껏 해온 것은, 당신을 위한 것인데... 아니..., 아니야. 이젠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랑해 마지않는 당신이, 내 모든 충성과 믿음을 바친 당신이 이를 이렇게 거부하는데 억지로 쥐어주려고 하고있는 것이 아니던가. 이건... ...이건, 내 이기심이다. 지독하게도 당신만을 위하는 내 이기심이 부른 참사다. 당신이 더 당신을 위했더라면, 나 따위 돌아보지 않을 정도로 훨씬 이기적이었다면... 그랬다면 조금 더 편했을텐데. 물기어린 목소리로 당신을 부른다.) ...베르너.... 베르너... 미안합니다...,제 이기심이 이윽...이윽고 당신을 여기까지 끌어내버렸습니다... 당신에게 저는... 행복따위를 약속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울컥이며 쏟아지는 피를 손으로 틀어쥐듯 막는다. 통증은 이제 아무래도 좋다, 당신을 조금 더 담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자꾸만 시야가 멀어지려는 것을 가까스로 다잡는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미안합니다, 제가 죄송합니다... 제가... 저는...저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당신을 어떻게 해도 구할 방도가 이제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윽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결국 차오르는 눈물에 고개를 숙인다.) 제가..., 제가... 제가 어떻게 해야 당신을 위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대로... ...이대로 이 차가운 눈 밭에서, ...당신과 함께 남는 것이... ...그것이..., 당신을 위한 일일까요...
베르너 L. 퍼디난드:(기어코 당신이 운다.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인다. 당신의 떨리는 목소리에 담긴 내 이름이 멀게 느껴진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말을, 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을 뿐이었다.) 안톤, 내 행복의 기준을 당신이 정하지 마십시오. 말했잖습니까. 당신이 내 행복이라고. 당신의 존재, 그 변함없는 충성, 굳은 신념으로 이루어진 몸과 마음. 당신 자체가 내게 행복입니다. 당신이 내게 해 온 모든 헌신과 희생이 내 행복입니다. 제발 죄책감 갖지 마십시오. 이것은 비극도, 참사도 아닙니다. 나는 지금 당신과 함께이기에 그 무엇보다도 행복합니다. (눈물을 흘리는 당신을 보았다. 손을 들어 당신의 눈물을 닦아 주며 당신을 향해 미소지어 보였다. 여지껏 당신에게 보였던 미소 중 가장 따스하고, 행복에 겨운 미소를.) 사과하지 마십시오. 당신에겐 죄가 없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나를 위했습니다. 당신이 나를 생각하며 한 모든 행동이 그렇습니다. 당신은 내 곁에서 살아 숨쉬는 것만으로 나를 위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슬퍼하지 말아 주십시오. ... ... 마지막으로 입맞춤이라도 할까요. (그 말을 마치며 당신을 향해 있던 미소에는 씁쓸함이 담겼다.)
안톤 셀레스:(죄책을 갖지도 말고, 비극도, 참사도 아니라고. 나 자체가 당신의 행복이 된다고. 고개를 들어 너무나도 달콤한 말을 말해주는 당신에게 시선을 맞춘다. 그 모든 것이 행복이었다고 말해주며 웃어보이는 당신의 얼굴이, 그것을 담는 시야가 흐린 것이 원통하다. 분명 그 어느순간보다도 환하게 웃는 것만 같은데, 그 어느 순간보다도 따스한 웃음이었을건데. 얼굴에 닿아오는 손이 차다. 그럼에도 그 손짓은 너무도 따스해서, 결국 피가 묻은 손으로 감히 당신의 손을 맞잡는다. 결례를 용서해달라는 말도 나오지 않고, 그저 그렇게. 당신은... 왜 이렇게 상냥한 것입니까, 제게 있어서. 어찌 이렇게 따스해지실 수 있습니까.) ...사랑합니다, 사랑했습니다. ...앞으로도, ...당신 곁에서 사랑할 것이라고, 말하겠습니다. ... ...눈이 날리는 이곳은 이렇게도 추운데, 당신은 왜이렇게 따스한걸까요. (아직 물기가 어린 눈으로 웃음짓는다.) ...입맞춤... ...좋죠. 마지막... 이겠습니다. 이것도. (당신의 손을 제쪽으로 당긴다. 허리를 감싸안고, 그대로 당겨 안았다. 가까이에서 유독 마주하는 푸른 눈동자가, 물빛으로 선명히 빛나는 것 같다.) ...피비린내가 꽤 날텐데... 괜찮으실까요.
베르너 L. 퍼디난드:(당신의 물기 어린 눈이 미소로 휘어지는 것을 보고 벅차오르는 기쁨을 느낀다. 나는 당신의 미소가 좋다. 미소를 보고 싶었다. 내가 기억하는 당신의 마지막 모습은 미소이기를 바랬다.) ... ... 당신이니까요. 오로지 당신이 나를 이렇게 만들지 않았습니까. 사랑합니다, 사랑했습니다. 사랑할 것입니다. 이제, 남은 인사는... 저승에서 만나서 하죠. (분명 이렇게 눈밭의 위에 있는데도, 냉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따스하다. 당신과, 이 상황과, 모든 것이. 당신이 허리를 당겨 안자 그대로 제 팔을 뻗어 당신을 감쌌다. 이제는 탁색된 금안마저 아름답다.) 피비린내 같은 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짧게 말을 던지고는, 당신에게 먼저 다가가 당신과 제 입술을 맞췄다. 아, 지독하게도 달콤한 마지막이다.)
지독하게도 달콤한 입맞춤을 마지막으로,
그가 당신의 품에서 무너져 내립니다.
사랑했다는 말을 남기고,
앞으로도 사랑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
당신을 주군으로 삼아, 행복했습니다.
당신을 만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당신을 믿고, 헌신하고, 충성하며, 모든 것을 바치는 삶을 보내는 것에
한 점의 후회조차 남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품에 기대어 눈을 감은 그의 표정이
그렇게 말하는 듯 했습니다.
영원을 당신에게 약속합니다.
당신과 영원히, 같은 길을 걸을 것입니다.
사랑하고, 사랑했으니까요.
...
아.
눈보라가 그쳐옵니다.
지평선 너머로, 동이 완전히 터오릅니다.
품에 남은 그의 체온 때문일까요.
추위가 서서히 멀어져가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 모든 것이 지나가면...
당신과 나는 다시 함께할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이 들며, 어쩐지...
어딘가 행복한 것만 같은, 미소가 피어오릅니다.
영원히 함께 합시다.
당신을 믿으니까요, 안톤 셀레스.
【 창조엔딩 】 눈 위에 남겨진 것은, 두 사람의 사랑이라.
안톤 셀레스, 로스트.
베르너 L. 퍼디난드, 로스트.
이후 베르너는, 핏자국을 뒤따라온 사교도들에 의해 사살당합니다.
______________________2019.06.17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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